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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시원한인터뷰] 방랑 부부가 전하는 남미의 진짜 속살 
여름만 되면 서점은 여행서적으로 넘쳐난다. 저마다의 얼굴을 가진 여행서적들은 전쟁을 방불케하는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 책들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여행을 가지 않는 것은 일종의 죄악을 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당장이라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불안감이 고개를 내민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조금은 유별난 콘셉트로 여행을 다녀온 부부의 이야기에 주목해 보는 것은 어떨까? 바로 <한 달에 한 도시 2 : 남미편>을 펴낸 김은덕·백종민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신혼집 전세금을 빼내 한 달에 한 도시를 다녀오겠다는 야심찬 목표로 전 세계를 돌아다닌 이들의 이야기는 늘 여행을 꿈꾸는 우리에게 있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전달하고 있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 집 나가기를 마다하지 않고 고생을 자처한 부부가 있다. 30대 중반의 김은덕·백종민 부부는 올해로 결혼 4년 차를 맞이한 신혼부부다. 국제영화제에서 스태프로 일하다 눈이 맞았던 이들은 연애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결혼에는 뜻이 없었던 ‘비혼주의자’였다. “제천에서 송어 회를 먹으면서 남편 종민에게 말했어요. 아르헨티나의 소고기가 맛있다던데 생각 있으면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요. 그게 연애의 시작이면서 세계여행의 시발점이 되었죠.” 2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던 이들은 청첩장 한 장 만들지 않고, 작은 인도식 밥집을 빌려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의 처음부터 끝까지 부부가 직접 기획하고 연출했다. 최근 톱스타 부부가 치러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작은 결혼식의 토대를 이들 부부는 진작에 만들었던 것이다.
부부는 결혼 후 홍콩, 영국, 터키로 이어졌던 2주간의 신혼여행을 다녀오면서 세계여행을 떠나자는 결심을 굳혔다. 이미 결혼 서약을 통해 ‘결혼을 하면 세계여행의 꿈을 이루겠다’ ‘아르헨티나로 가서 소고기를 마음껏 먹겠다’는 다짐을 한 터였다. 어릴 적부터 세계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이들은 쿵짝이 잘 맞았다.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스스로 준비하면서 인생을 직접 설계하는 것의 즐거움을 느꼈던 부부는 결혼하고 5년 뒤에 가자고 약속했던 세계여행의 계획을 1년 뒤로 앞당겼다. 계획했던 비용은 2년간 총 4000만원. 액수 자체로만 들어서는 입이 떡 벌어지는 돈이다. 하지만 보통 한 사람이 일년 동안 세계여행을 하면서 사용하는 비용이 평균 2~3000만원이라 하니 두 사람의 몫치고는 지나치게 소박하다.
이에 아내 은덕은 “사실 저희가 내세운 ‘한 달에 한 도시’라는 여행 콘셉트는 경비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여행방식이었어요. 결여와 결핍이 만든 현실적인 대안이었다고 할까요.”라고 전했다. 더불어 남편 종민은 자주 이동하면 쉽게 지치고,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것에 몸서리 치도록 부끄러워하는 자신들의 특성상 ‘한 달에 한 도시’라는 콘셉트는 그야말로 적격이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들 부부는 살고 있던 신혼집의 전세금을 빼내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2년 동안 유럽, 남미, 아시아 등 24개 국가의 25개 도시를 여행했다. 비록 전세금을 빼내 여행을 떠났다지만 따지고 보면 세계 곳곳의 도시가 이들의 신혼집이었던 셈이다.
우선 부부는 여행을 가기 전, 각자 한 달씩 살아보고 싶은 도시를 뽑았다. 그 중 겹치는 도시를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나머지는 문화권이 최대한 다른 도시로 선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때 자신이 왜 그 도시를 선택했는지 상대방을 설득해야만 했다고. 덕분에 자신이 가고자 하는 도시와 관련된 인문·역사 서적을 읽고 치열하게 공부했다. 영어 공부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 종민은 도서관과 서점에 들러 시중에 나와있는 여행 에세이를 닥치는 대로 읽었단다. 이들은 여행을 시작하는 단계부터 블로그에 기록을 하기 시작했는데 2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 순간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남겨두었다. 부부의 여행기는 포털사이트 다음 ‘스토리볼’에 연재되면서 뜨거운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블로그에 에세이 형태로 써놓았던 글을 모아 직접 기획안을 꾸려 출판사에 보냈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이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였다.
이들은 8개월간의 유럽여행을 마치고 스페인에서 크루즈에 올라탄 뒤 콜럼버스의 항해를 따라 대서양을 넘어 미국 뉴욕을 시작으로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볼리비아, 브라질을 횡단했다. 아내 은덕이 뽑은 남미 최고의 도시는 어디였을까? “볼리비아 남부에 위치한 따리하는 남미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도시에요. 일부러 꽁꽁 숨겨 놓고 언급을 잘 하지 않는 편이죠. 책에서 분량이 적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고요. 따리하는 볼리비아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고도가 낮아서 숨 쉬기가 수월해요. 와인이 생산되는 도시답게 연중 따뜻한 햇살과 맑은 하늘을 가진 곳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의 미소와 여유로 넘쳐나고 무엇보다 음식이 맛있어요. 우유니 사막보다 이곳이 더 기억에 남을 정도예요.”
부부의 여행방식은 숙소에서조차도 기존의 여행자들과는 방향을 달리했다. 현지인의 관점에서 세계를 돌아보겠다고 떠났던 만큼 호텔이나 호스텔과 같은 일반적인 숙소 대신 에어비앤비를 선택했던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저렴한 비용으로 현지인 집의 빈방을 빌리는 숙박을 말한다. 아내 은덕은 “에어비앤비는 친구 혹은 이웃의 방을 잠시 빌리는 개념이예요. 호텔에서의 서비스를 기대하고 가면 실망이 클 수 있어요. 하지만 작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현지인들이 사는 모습과 그들의 문화를 체험한다는 생각으로 머물면 좋아요.”라고 조언했다. 덕분에 <한 달에 한 도시:남미편>에는 함께 밥을 해먹으며 식구처럼 살갑게 지냈던 호스트부터 잠시도 붙어있고 싶지 않았던 호스트까지, 에어비앤비를 통해 만남을 가졌던 호스트와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더불어 교통비를 줄이기 위해 편법을 쓴 바람에 경찰로부터 딱지를 받았던 에피소드를 접했을 때에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딱지를 받은 뒤 나름의 억울함과 반성, 깨달음이 뒤섞인 대화를 이어가는 부부의 글을 읽다 보면 남의 부부싸움을 몰래 엿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소원해 마지않았던 아르헨티나 소고기를 마음껏 먹다가도 한국 식당을 가지 않겠다는 규칙을 깨버리고 눈만 뜨면 한국식 밥집을 찾아 달려가는 부부의 모습은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보고 싶은 공연을 예매하기 위해 배짱 좋게 창구로 가서 들이미는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책 곳곳에는 ‘공연 10분 전에 창구로 달려가면 좋은 자리를 싸게 구할 수 있다’ ‘크루즈를 싸게 타기 위해서는 창문을 포기하고 1년 먼저 예약하라’는 식의 쏠쏠한 팁 또한 즐비하다.
부부의 말을 빌리자면 눈이 번쩍 뜨이는 유명 관광지와 귀가 솔깃한 여행정보를 기대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조금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이들은 뉴욕을 여행하면서도 자유의 여신상을 보지 않았고, 남미를 여행하면서도 마추픽추를 지나쳤기 때문이다. 부부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고 다시 볼 수 있는 것들이라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증명하듯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남들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 않았기 때문에 부부의 글 역시 허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여행을 통해 만났던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비교적 담백하고 솔직하게 담겨있다. 특히 서로 대화 형식으로 친근하게 써 내려간 부분은 이 책의 백미라 꼽을만하다. 매번 쏟아지는 흥미로운 이야기 덕분에 사전두께만큼 두꺼운 이 책을 순식간에 100페이지 가량 읽어나갔다. 그것도 고작 30분만에 말이다. 다만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들 부부의 사유와 에피소드가 얼마만큼의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느냐에 대해서는 살짝 의문이다. 여행 서적이라면 지녀야 할 여행 사진의 퀄리티 또한 곧잘 희생시키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아내 은덕은 자신의 성격을 불꽃에 뛰어드는 ‘불나방’이라 표현했다. 할 일이 생기면 바로 시작해야 하고 계획도 잘하지만 꼼꼼하지는 못하다고도 덧붙였다. 반면 남편 종민은 일을 시작 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세심한 일 처리가 주특기여서 아내가 벌려놓은 일을 꼼꼼하게 마무리하는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고 한다. 남편 종민은 아내와 자신의 관계를 ‘물과 기름’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고 생활하는 패턴도 다르기 때문이란다. ‘여행은 시험의 무대가 된다’라는 말처럼 이들 부부에게도 남미에서의 여행은 시험 무대가 되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

“여행과 함께 우리의 평화로운 관계는 깡그리 무너졌다. 서로를 향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도 했고 휴대폰이나 책을 던지는 것은 예삿일이 되었다. 치고 받고 밀치다가 화가 나서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다. 2주에 한 번씩은 꼭 싸웠다. 여행은 고사하고 함께 살기도 버거운 사람이라는 생각에 이혼도 여러 번 생각했다. 우스갯소리로 벌여 놓은 일이 많아서 헤어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그만큼 우리의 관계는 위태로웠다.”
<본문 중에서>
남편 종민은 “여행하는 동안 발전해 온 서로의 관계를 보면 30년 차 부부가 말하는 인생의 순서와 같더라고요. 여행을 시작하면서는 알콩달콩 하다가도 위태로운 순간들을 맞이하고, 그렇게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적당히 포기하는 과정들이 부부의 긴 삶을 응축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지금은 하나부터 열까지 아내와 모든 이야기를 나눠요. 병에 걸렸을 때의 대처나 어떤 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등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를 해요.” 라고 전했다. 함께 무수한 고비를 넘겨온 이들의 여행은 서로의 관계를 더욱 성숙하게 만든 것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냐고 물으니 아내 은덕은 남편과의 전쟁 같은 싸움도, 밑바닥까지 드러난 체력도 아닌 ‘청빈한 삶’을 꼽았다. “여행자였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살 수가 없었어요. 물가가 비싼 곳에서는 집에서 밥을 해먹고 눈이 돌아가는 물건이 보여도 허벅지를 꼬집으며 참아야 했죠. 금주와 금연은 필수고요. 술을 마시고 싶으면 마트에서 구입해 공원이나 집에서 마셨어요. 유럽이나 미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했던 남미에서는 못다했던 술을 원 없이 마셨죠. 오죽하면 하루에 두 병씩 와인을 마시기도 했다니까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 부부는 최근 서울 마포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아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짜리 방을 계약했다고. 동시에 부부가 다짐한 슬로건은 여행에서 그랬던 것처럼 최대한 ‘가난하게 살자’는 것이었다. 이는 지난 2년 동안 가진 것 없이도 행복했던 여행에서의 삶을 서울에서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었다. 덕분에 이제는 서울에서의 삶이 버텨야 하는 일상이 아니라 여행자의 눈으로 낯설게 바라보게 됐다고. 아내 은덕은 대부분의 소비를 절제하며 살고 있다고도 전했다. “비싼 휴대폰 요금제 대신 각자 5만원짜리 선불칩을 샀어요. 이걸로 1년을 사는 거죠. 사실 받는 것은 무료이니 받는 것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되요. 인터넷은 여행 전 사용했던 에그를 이용해 필요할 때만 켜고요. 교통비는 반경 5km는 걸어서 다니기로 했고 가급적 카페와 식당, 술집 등은 자제해요. 여행 다닐 때 머리카락을 스스로 잘랐는데 지금도 미용실은 안 가고 제가 다 하고 있어요.”

이어서 이들 부부는 서울에 와서도 계속 기록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신들의 서울 살이가 일종의 프로젝트가 됐다며 프로젝트의 이름을 ‘돈 없는 부부의 우아한 서울살이’라 소개했다. 결혼식부터 세계여행까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이어가고 있는 부부는 사회의 틀에 맞추는 것을 포기하고 대안적인 삶을 살겠노라는 포부를 밝혔다. 부부는 마지막으로 아직까지도 여행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독자들을 향해 이렇게 당부했다. “저희 부부의 여행에는 청춘, 도전, 열정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어요. 대신 ‘사람’을 넣었죠. 덕분에 현지인들의 삶을 지켜보고 그들과 친구가 되어 낯선 도시를 즐기는 법을 배웠어요. 이처럼 각자 자신들만의 여행을 즐기는 단어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이들 부부를 보면서 ‘대책이 없다’ ‘한심하다’ ‘철이 없다’고 혀를 찰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젊었을 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오롯이 누리기 위한 이들의 노력이 과연 그러한 잣대로만 평가될 수 있을까.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말했다. 남들을 따라가기 위해 발버둥치기 보다 자신들만의 개성 있는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부부를 보고 ‘현명하고 지혜롭다’고 말하는 것이 단순히 이들 부부를 옹호하기 위한 레토릭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행복을 훗날로 미루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담대하고 용기 있게 떠났던 이들의 모습이 부디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지 않고 희망의 거센 파도를 몰고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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