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의 수필 낙서

나에 본모습들

수채화같은 삶 2004. 6. 16. 11:56

세상에 가장 어려운게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 느끼는 나와의 괴리를 항상 느낀다.

어쩌면 다른 사람이 느끼는 "나" 가 가장 객관적인 "나"가 아닐까 싶다.

어릴적 내가 기억하는 나는 항상 굼뜨고 소극적이고 있는듯 없는 듯 한 존재였다.

가족들은 그런 나를 항상 뭐라고 핀잔을 주셨다. 3남1녀중에 위로 형 누나 아래로는 남동생을 둔 나로선 내 존재를 알리기가 무척 버거웠다 .

형과 싸우면 동생이 형에게 대든다고 부모님께 혼나고 동생과 싸우면 막내하고 싸운다고 혼나고 지금같은 낀세대의 비애를 일찍부터 맞본거 같다.

난 항상 그런 환경에 왜 중간에 태어나서 천덕꾸러기가 된건지 원망 스러웠다.

한번은 학교 갔다가 집에 왔는데 현관문 밖에 짜장면 빈 그릇이 있었다. 또 나만 빼놓고 저 맛있는 짜장면을 먹었구나 하는 생각에 서운했다. 막내라서 이쁨 받는 동생이 부럽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형은 대학을 보내지만 넌 기계공고나 가야한다고 미리 내 인생을 확정지었고 그래서 중학교 때는 공고에 가기 싫어서 공부를 하기 싫었다 내 의사가 무시되는 그런 현실이 싫었던 거다.

3학년1학기를 마치고 성적땜에 수도공고 입학이 불가능해지자 아버지는 내게 전주 인문계로 진학을 허락하셨다.

여름방학때 옥상에 평상 하나 놓고 시원한 우물물 받아놓고 고시생처럼 혼자 공부병에 걸려 더운 줄도 모르고 그간의 열정을 바쳐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초등학교 졸업때 받은 교육회장상을 받은 나라는 오기도 발동했다.

개학하고 반에서 일등을 했나. 너무나 기뻤다. 내 자존심을 지킬 수 있어서 그랬을꺼다.

전주로 고등학교를 진학해서 난생 처음  고향을 떠나 형과 단둘이 자취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미치도록 집이 그리워졌다 수요일만 되면 향수병에 시달리며 젖먹이마냥 어머니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언제나 동경하던 도시생활을 시작했는데 말이다. 그때부터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겪는 갈등과 생각들을 편지에 실어 보내면 가슴이 후련해지고 향수병도 조금은 가라앉고 했다.

참 내가 이제 철이 들어가는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에게 내가 얼말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편지 쓰던 버릇은 군대 갈때까지 계속 되었던것 같다.

난 글쓰는걸 좋아한다.  며칠전에 큰 아이가 글짓기를 해야 한다고 걱정을 한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이냐고 질문을 한다.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가 되고 감동을 느낄 수 있으면 좋은 글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스스로 연습장에 써서 가져 오라고 했다. 우리 애들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또 하나 난 별반 특기가 없는 멋없는 사람이란 생각을 한다.

그런데 나도 놀란 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댄스스포츠에 도전한거다.

운동신경이 둔해 난 운동에 대해선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피하게 마련인데 자의든 타의든 운동에 도전한 거다 그것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춤을 말이다.

그런데 막상 학원 등록을 하고 나서 첨에 쭈빗쭈빗 학원문을 열고 도둑고양이처럼 들어가던 내가 차츰 그 매력에 빠져 남들 눈을 의식하지 않고 강의 시작전에 플로어에서 연습에 열중한다

집에선 컴퓨터에 음악과 동영상을 받아놓고 거실에서 맹연습을 한다.

땀으로 뒤버범된 몸을 샤워하고 나면 그 상쾌함에 빠져든다.

회사 상사분이 그러신다 네가 춤추는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난다고.....

난 그 이후로 내 가슴속에 묻어둔 열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난 내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너무 우유부단하고 소심하다는 생각을 든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변함없이 곁에 있을려고 한다.

마지막 최후의 순간까지 믿어주는 친구가 되자고 다짐을 한다.

난 곰을 좋아한다. 미련곰퉁이 라고 곰을 비하하지만 곰처럼 우직한게 또 없다

난 우직한 곰이 되고 싶다. 한발치 떨어져서 한번 더 생각하고 그걸 즐길 줄 아는 곰이 되고 싶다.중학교때 한 친구가 나에게 老熊이란 호를 지어주었다

난 아직 나이가 어리니 靑熊이 좋겠다고 해서 한동안 靑熊이란 호를 편지 말미에 쓰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지금도 곰을 좋아한다.

그리고 고치기 힘든 나에 천성을 그냥 단점이라고 피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눈으로 보는 맘에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난 곰이다 라고 말하곤 한다. 그 뒤에 곰의 우직한 장점에 열변을 토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굳어진 내 좌우명이 "스로를 사랑하자"가 되었다.

자기가 처한 환경을,자기가 가진 단점까지도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자만이 자기의 인생을 사랑하고 그 만한 열정을 가지고 인생여백을 색칠해 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바쁘게 앞만 보고 가는 세상에서 나는 미련곰퉁이처럼 한발치 떨어져 관조하면서 그 빛깔과 향을 음미한면서 살아갈 것이다.

우유부단한 미숙아가 아니라 심사숙고하는 철학자가 되고싶고, 쫒기듯 달음질하는 조급한 사람이 아니라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가 되고싶고, 나뭇잎이 흔들릴 때라야 바람의 의미를 아는 무감각한 장애인이기 보다는 릴케의 가을날처럼 시린 가슴에 아파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

나만의 빛깔과 향기를 가진 나무가 되고 싶다